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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8 투석전만 참여하는 고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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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업무관리자 작성일21-12-31 10:28 조회2,0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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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처음 응시한 것이었고, 만 스무 살의 봄날이었다.

대구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재선 형과 함께 자전거로 전국일주에 나선 참이었다. 서해안과 남해안을 돌아 대구에 도착한 우리는 새카맣게 타 있었다. 대구에서 재선 형과 함께 축배를 들었다.

그해는 아버지에게도 봄이었다. 필생의 과업이던 집 장만에 성공한 것이다. 안도감 때문일까? 아버지는 돈 얘기를 덜 하는 대신 자주 웃었다. 사람이 바뀐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사법고시 1차 시험은 시작에 불과했다. 2차를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2차는 수석합격자도 통과를 자신하기 어려운 시험이었다.

2차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신림동에 있는 관악고시원에 들어갔다.

학교에선 수시로 시위가 벌어졌다. 군사독재 타도와 학원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대열에는 친구 이영진과 박정추가 있었다. 이영진은 나를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시키려 했던 친구였고, 박정추는 행정학과 학생회장을 하고 있는 동기였다.

나는 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감옥 갈 각오를 하고 싸우는 친구들 옆에서 고시공부만 하는 내가 구호를 외치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학생들이 집회후 투석전에 나서면 그때는 나도 뛰어 들었다. 뒤통수 바로 위에서 최루탄이 터져 최루가스를 하얗게 뒤집어 쓰고 몇주간 두피가 벗겨지기도 했다.

가을이 절정이던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투석전이 벌어졌다. 집회가 있다는 통문을 듣고 학교에 갔던 나도 투석전이 시작되자 함께 돌을 던졌다.

시위가 끝나고 학교를 빠져나와 박정추와 막걸리를 마셨다. 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박정추도 특대장학금을 받는 수재였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열심히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그는 학도호국단을 없애고 총학생회를 만들 때까지만 공부를 미뤄두겠다고 했다.

그날 취하도록 마시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밤에 고시원 앞에 나와 있는데, 누가 잔뜩 취해서 가방을 발로 툭툭 차면서 올라오는 거예요. 별놈이 다 있다 싶어 보니까, 재명이였어요. 너무 안 됐더라구요. 어린 나이에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나 싶어 짠했죠. 그 모습이 오래 눈에 밟혔어요.”

그날 고시원을 걸어 올라가던 내 모습을 본 선배 최원준의 말이다. 그는 내가 신림동 고시원 세 곳을 따라다니며 함께 공부한 선배다.

선배는 공부가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나 싶었다지만, 그날의 내 모습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당장에 운동에, 시위에 뛰어들 수 있는 이영진과 박정추 앞에 부끄러웠다. 동기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때도, 지금도 나는 지극한 실용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이다. 저 멀리 보이는 대의보다 공장을 다니는 여동생의 아픔이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동기들에 대한 부채감을 없애는 방법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되어 약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

박정추와 술을 마시던 그 밤, 마음은 소주보다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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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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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재명의 웹자서전] ep.28 투석전만 참여하는 고시생|작성자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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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민홍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