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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3 소년공, 법대생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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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업무관리자 작성일21-12-17 15:50 조회2,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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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여름엔 모기와 싸우고 가을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공부했다. 담요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덮고 잠들어서 담요도 도로 집에 가져다 놓았다.

책상에 볼펜을 곧추세워 놓고 공부하다 졸면 이마가 찔리게 했다. 나중에는 가.슴 닿는 부분에 압정도 붙여놓았다. 그때 많이 찔렸다. 처음 찔릴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나중엔 찔린 채로 자고 있기도 했다. 덕분에 참고서 곳곳에 핏자국이 남았다. 말 그대로 혈투였다.

나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 심정운이는 이렇게 말한다.

“재명이는 한 번 한다고 하면 그렇게 지독하게 하는 친구였어요. 하여튼 집중력과 끈기는 천하무적이었죠.”

학원에서 점심과 저녁에 양은도시락의 식은 밥을 먹었는데 나중엔 도시락도 한 개로 줄였다. 배가 부르면 졸렸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애처로웠던 엄마는 밥을 꽉꽉 눌러 도시락을 싸주곤 했다. 그 시절 엄마가 준 차비로 학원에 가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공부했다. 행복했다. 그렇게 여한 없이 공부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침내 대입 학력고사 일인 1981년 11월 24일이 밝았다. 대입준비를 시작할 때 내 모의고사 성적은 전국 30만 등 밖이었다. 그렇게 시작해 8개월 공부 끝에 마지막으로 본 모의고사에서는 2천 등 안에 드는 성적을 올렸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최상위권에 들어야 했다.

결과가 나왔다. 불수능이었는데 최상위권인 285점이었다. 장학금 대상 안에 들었다. 성공!

그 성적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지 못할 대학은 없었다.

어디를 지원할 것인가?

절대적인 기준은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앙대 선호장학생 A급은 3학년까지 등록금 면제에 매월 20만 원씩의 특대장학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과가 의대와 법대였는데 의대는 추가비용을 내야 해서 애초에 제외했다.

그렇게 중앙대 법대생이 됐다. 특대장학금 20만 원은 내가 공장에서 받았던 월급의 세 배에 달했다.

내 입장에선 꿈 같은 일이었다. 어깨가 으쓱했다.

입학식이 보름 넘게 남았을 때 미리 교복도 맞추고 모자도 샀다. 대학교복을 입는 게 촌스러운 행동이라는 건 몰랐다. 뭐가 어떻든 평생에 교복 한 번 입어보는 것이 꿈이었으니까. 성남시장 시절 무상교복 정책은 그런 경험에 뿌리가 닿아있다.

대학 입학식 날, 엄마와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연한 살구빛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엄마와 대학교복 차림의 내가 중앙대 교정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미소 짓고 있다. 엄마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데이. 니는 크게 될끼라고 내가 그켔제?”

우리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환한 봄날 아래 서 있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재명 #웹자서전 모아보기 : https://bit.ly/3mggyFy

*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

 

[이 게시물은 업무관리자님에 의해 2021-12-21 13:50:08 카드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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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민홍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