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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험한 선생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학년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내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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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가는 수학여행인데 재명이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아니, 우리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방침을 세우셨다니까요. 삼계초등학교 5학년은 싹 다 수학여행을 간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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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 화전민 소개집까지 쫓아온 선생님은 그렇게 열변을 토하셨다. 수학여행비는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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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신세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어머니는 슬프고 복잡한 표정으로 수학여행 참가동의서에 동그라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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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못내 존경스럽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선생님을 바래다주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화전민 소개집을 선생님께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소개집은 강제로 이주당한 화전민들을 위해 시멘트블록으로 지은 방 두 칸짜리 허술한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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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이 모든 학생은 수학여행을 간다는 방침만 세운 건 아니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 사정을 살펴 스스로 수학여행비를 벌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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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이 둘을 하천가 개간한 돌밭에서 돌을 고르거나 고사리손으로 보리 베는 일을 따내 품삯을 받아 저축하게 해주셨다. 품삯도 어른들 임금의 절반에 가까운 큰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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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매점을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게 하고 가난한 아이들몫의 수익금을 수학여행비로 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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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시대를 앞서가신 선생님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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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고, 스스로 성취하게 해주셨던 셈이다. 깊은 배려와 세심한 사랑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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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5학년은 가난 때문에 빠지는 학생 없이 모두가 생전 처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거기서 여름에도 얼음이 있다는 걸 1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처음 알았다. 생선뼈째 갈아만든 진짜 어묵의 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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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환상 같은 한 장면도 교장선생님이 만들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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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묶은 여성교장님이 한번은 한겨울에 전교생 모두를 학교앞 논바닥으로 나오라 하셨다. 멀리서 군용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왔는데, 놀랍게도 그 거대하고 신비한 비행물체가 우리 눈앞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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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돌팔매질 대상이던 그 육중한 쇳덩어리를 가까이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이었는데, 교장선생님이 조종사와 얘길 나누더니 손을 흔들어 아이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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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봐라! 이걸 타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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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의 그 말은 마법처럼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제일 먼저 다가가 헬리콥터의 차가운 동체를 만져보았다. 가.슴이 저릿하고 온 몸이 붕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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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버린 헬리콥터는 미지의 광대한 세계에 대한 꿈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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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것. 그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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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가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그 최초의 경험에서 싹을 틔웠을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매점을 운영하고 그 수익을 수학여행비로 나누어 가진 일은 협동조합과 보편기본소득에 대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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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가끔씩 예상을 벗어나 경이로울 때가 있다. 내 안에 사랑 넘치는 그 선생님들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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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