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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5 / 12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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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업무관리자 작성일21-12-24 12:38 조회1,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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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5 / 12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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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블’을 ‘비블’로 읽는 법대생>

 

대학이 이상했다. 하루에 수업 한두 개가 전부였다. 대입 전까지 늘 시간이 없어 조바심치며 공부했는데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돌았다. 


대신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한자였다. 법학, 경제학, 행정학 전공서적을 읽는데 온통 한자였다. 검정고시와 단 8개월 대입준비로 대학 들어온 자는 한자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옥편을 뒤져가며 끙끙거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평생에 없던 진풍경. 아버지는 모르는 한자가 없었다. 낯설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슬쩍 아려왔다. 

이후 나는 아예 옥편을 다 뜯어먹어 버릴 작정으로 한자를 공부했다. 


복병은 또 있었다. 교련수업의 총검술과 제식훈련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교련수업을 받은 동기들에 비하면 나는 형편 없었다. 제식훈련을 할 때마다 발이 틀렸다. 이런 나를 두고 법대 동기생 이영진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교련을 못하는지 몰랐는데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하더라구요. 재명이는 학교 다닌 애들이면 당연히 아는 걸 잘 몰랐어요. 근데 교련을 제일 못하면서 교련복은 혼자 입고 다녔죠(웃음).”


학교 다닌 애들과 다른 점은 또 있었다. 후에 사법고시 1차에서 영어 말하기 시험을 보면서 깨달은 것인데 내 영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즉 문법은 잘했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내 영어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게 ‘바이블’은 ‘비블’이었고, ‘아이언’은 ‘아이롱’이었다. 나라 이름은 ‘아일랜드’, 섬을 뜻하는 단어는 ‘이질랜드’인 줄 알았다. 영어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버스와 화장실에서 독학한 영어의 최후. 교정이 필요했다. 


미,팅도 해보고 고고장도 가봤다. 하지만 대체로 시시했다. 교련복에 고무신 신고 다니는 이 누추한 청년에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나는 20세 미만 대학생 70%가 키스 경험이 있다는 통계를 보고 깊이 충격을 받는 청년이었다. 내게 이성은 머나먼 이국이었다.    


한편, 특대장학금으로 서울에 방을 얻어 재선 형과 공부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끝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대신 아버지와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선 보관, 후 지급’이었던 것을 ‘선 지급, 후 보관’으로, 제도 혁신을 단행한 것이다. 즉 이전까지 아버지에게 월급을 모두 맡기고 필요한 돈을 받았던 것을, 이제 장학금을 받으면 재선 형의 학원비와 우리의 책값과 용돈을 먼저 떼고 아버지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도 거기까진 합의해주었다. 


선지급권을 확보하고 꿈에도 그리던 공부방은 포기해야 했다. 다음에 이사할 때는 집을 사서 가겠다던 아버지의 계획도 어그러져 우리는 다시 지하 단칸방으로 퇴각했다. 2백만 원 전셋집이 너무 허술해 겨울을 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어느 새벽, 여섯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방에서 법학개론을 펼쳤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식구들의 숨소리가 달라 붙었다.  


- 지금 벌써 2시 30분이 넘었다. 엄마, 아버지, 형, 형, 동생, 동생의 숨소리가 들린다. 잠에 깊이 빠진 모습들. 이렇게 한 방에서 고생하며 살지만 정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살았기에 우리 형제는 우애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버지와는 등지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우리 가정에도 영원한 행복이 오기를... 1982. 3.31


#이재명 #웹자서전 모아보기 : https://bit.ly/3mggyFy

*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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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민홍철